회사원 서승현(28·여)씨는 오는 11월 결혼을 앞두고 있다. 서씨는 체중이 정상 범위에 속한다. 그런데 결혼식에선 현재보다 날씬하게 보이고 싶어 두 달 전 체중 감량에 돌입했다. 핵심은 ‘지방 덜 먹기’. 유제품을 고를 때 ‘저지방’만 선택했다. 삼겹살 같은 고지방 음식은 되도록 멀리했다. 그리고 지방이 적은 것으로 알려진 음식 위주로 먹었다. 샐러드·과일·단호박·국수·파스타 등이다. 서씨는 “지방 섭취를 줄이고 저지방 제품을 먹으면 다이어트를 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말을 듣고 식습관을 바꿨다”고 말했다.
혈관벽 이루는 가장 중요한 성분 비만 부르는 건 탄수화물·당분 일부 저지방 제품엔 맛 내는 당 첨가 콜레스테롤 산화시켜 혈관 망쳐
결과는 어땠을까. 체중이 별로 줄지 않았다. 지방 섭취가 안 줄었던 걸까. 지방 섭취는 줄긴 했다. 문제는 과다한 탄수화물 섭취였다. 박용우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서씨의 식단은 저지방식으로 짜여 있긴 하나 상대적으로 탄수화물 음식이 많다”고 지적했다. 서씨는 지방을 피하기 위해 생선·육류를 줄였다. 이 과정에서 단백질 섭취도 덩달아 줄었다. 자기도 모르게 탄수화물을 많이 섭취했다. 결과적으로 탄수화물 위주의 식단이 됐다. 지방·탄수화물·단백질 사이의 균형이 깨져 신진대사가 흐트러졌다.
유제품은 저지방 골라 먹을 필요 없어
서씨의 사례처럼 ‘지방은 무조건 건강에 안 좋다’고 생각해 저지방 식단으로 바꾸고 ‘저지방’ ‘무지방’ 제품을 선택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서씨는 체중이 정상이고 고지혈증·당뇨병 같은 혈관 질환도 없다. 이런 사람들은 굳이 저지방 음식을 먹을 필요가 없다는 게 의사들의 조언이다. 본인들은 건강에 이롭고 체중 조절에 도움이 될 거라고 여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지방이 적은 음식이 무조건 건강식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일부 저지방 제품은 지방이 줄어들면서 맛이 떨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첨가당을 쓴다. 박현아 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저지방 제품은 맛이 없다. 맛을 내기 위해 설탕 같은 첨가당을 더 넣는다. 당은 체내에서 콜레스테롤을 산화시켜 혈관 건강을 망가뜨린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선진국에선 “굳이 저지방을 먹을 이유가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해 영국 국가비만포럼(NOF)과 공공보건협회(PHC)는 ‘우유·요구르트·치즈 같은 유제품은 심장병을 일으키지 않는다. 굳이 저지방을 먹을 이유가 없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비만을 유발하는 주원인은 지방이 아니라 탄수화물과 당분이라는 이유에서다. 보고서에선 ‘탄수화물을 줄이고 건강한 지방을 섭취해야 한다. 설탕 같은 단순당 섭취를 줄이는 게 비만을 예방하는 길’이라고 안내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비슷한 입장이다. 내년 말부터 가공식품 영양성분 표시란에 ‘지방 섭취에 따른 칼로리’ 항목을 없애기로 했다. 대신 설탕·시럽 같은 첨가당에 따른 칼로리를 적도록 했다.
노인은 좋은 지방이 풍부한 식품을 골고루 챙겨 먹어야 한다. 다른 연령대에 비해 지방 섭취가 부족해서다. 질병관리본부가 지난 2월 발표한 ‘지방 섭취 현황’에 따르면 전체 에너지 중 지방으로 섭취하는 비율이 10·20대는 25%, 30·40대는 22%였다. 반면에 65세 이상은 13%에 그쳤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달 ‘대국민 건강선언’에서 균형 잡힌 식습관을 제시하면서 하루 에너지의 25%를 지방에서 섭취할 것을 권고했다. 이 권고대로라면 평균적 식단을 유지하는 사람은 지방 과다 섭취를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는 얘기가 된다. 임수 분당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비만·심혈관 질환이 있으면 지방 함량이 낮은 식단과 제품이 좋다. 하지만 건강에 별문제가 없는 사람이 굳이 저지방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저지방’ 식품이더라도 첨가당이 많아 칼로리가 높으면 오히려 건강을 해친다.
지방 섭취량의 30%는 포화지방으로
그간 ‘저지방=건강식’이라고 여겨진 것은 동물성 단백질에 많은 포화지방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이다. 박용우 교수는 "콜레스테롤을 높이는 주범이 포화지방이며 이게 건강의 적이라고 간주하는 건 과잉 해석이다. ‘포화지방을 먹지 말라’고 하기보다는 ‘좋은 지방을 먹자’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방은 호르몬과 세포막을 만드는 재료다. 박 교수는 "상온에서 굳는 포화지방은 안전성이 크고 불포화지방은 유동성이 있다. 두 가지가 적절히 들어와야 세포막이 건강하게 유지된다”고 했다.
포화지방은 혈관 건강에도 필수적이다. 임수 교수도 "혈관벽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성분이 지방이다. 지방을 안 먹으려고 지나치게 엄격히 조절하면 혈관벽이 약해져 터질 수 있다는 보고가 있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포화지방을 지나치게 많이 먹는 것을 피하라는 것이지 아예 먹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전체 지방 섭취량의 30%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포화지방도 먹어야 한다”고 했다.
다만 지방 중에서도 좋은 지방을 골라 먹을 필요는 있다. 같은 포화지방이라도 라면·케이크·삼겹살에 있는 것보다 살코기·치즈·다크초콜릿의 포화지방이 낫다.
이민영·박정렬 기자 lee.minyoung@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건강한 당신] 살찐다고 지방 안 먹으면, 혈관벽 약해져 고생
[건강한 당신] 한 자세로 오래 있으면 혈관에 피떡 … 1시간마다 5분 이상 움직여주세요
혈관은 동맥·정맥·모세혈관으로 이뤄져 있다. 혈관 질환과 관련한 대부분의 정보는 동맥에 관한 것이다. 비만이 유발하는 동맥경화증, 막혔을 때 스텐트를 삽입하게 되는 관상동맥, 그리고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뇌동맥류 모두 동맥과 관련 있다. 혈관 관련 연구나 신약 개발도 동맥에 집중돼 있다. ‘혈관=동맥’이 상식처럼 통한다.
걷기만 해도 혈전 예방할 수 있어
다리 붓는 하지부종 얕보다간 큰일
혈전이 폐동맥까지 가면 생명 위협
이런 상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심장 관련 국제학회에서는 정맥을 주제로 한 논문 발표가 점점 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2년 전 정맥 혈관의 신치료법을 허가한 뒤 정맥의 혈관 성형술 등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여성 51%, 남성 32%가 정맥 질환
정맥 질환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정맥 질환자가 늘고 있어서다. 가벼운 증상을 포함해 정맥 질환은 인구의 44%(여성 51%, 남성 32%)나 앓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정맥 질환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우선 ‘정맥 부전’이다. 정맥이 지나치게 확장되거나 혈액을 한쪽으로 보내는 판막이 제대로 닫히지 않아 혈액이 역류하는 것이다. 정맥 부전이 지속되면 ‘만성 정맥 부전’으로 악화한다. 미국에서는 전체 인구의 2~5%가 만성 정맥 부전을 겪는다. 여성은 40~49세, 남성은 70~79세에 발생률이 가장 높다.
두 번째 유형은 피떡(혈전)에 의한 정맥 질환이다. 심장에서 멀수록 정맥을 흐르는 혈액이 정체돼 혈전이 생기기 쉽다. 피부 안쪽 깊은 곳을 지나는 정맥(심부정맥)에서 생기는 혈전은 특히 문제다. 이를 ‘심부정맥 혈전증’이라고 한다.
심부정맥 혈전증은 주로 다리에서 나타난다. 일반인에게는 ‘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다리가 붓고 통증이 발생한다. 혈전이 정맥을 막으면 혈류가 느려져 혈액이 심장으로 원활하게 돌아가지 못한다. 중요한 혈관을 막으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
다리에는 심부정맥과 함께 피부와 가까운 곳을 지나는 표피 정맥이 있다. 고속도로(심부정맥)가 막히면 그 옆의 국도(표피 정맥)로 차(혈액)가 몰려 정체된다. 표피 정맥에 혈전이 생겨도 혈액이 몰린다. 이것이 흔히 아는 ‘하지정맥류’다. 하지정맥류는 전체 여성의 20~25%, 남성의 10~15%에서 발생할 만큼 환자가 많다.
정맥 질환이 늘어나는 이유는 뭘까.
첫째, 급속한 고령화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혈관 건강도 나빠진다. 17세기 영국의 내과 의사 토머스 시드넘(1624~1689)은 “인간은 자신의 동맥 나이만큼 늙는다”고 했다. 동맥과 나이의 상관성을 표현한 말이지만 여기서 동맥을 ‘혈관’으로 대체해도 무방하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에 따르면 65세 이상 사망 원인의 40%는 혈관과 관련돼 있다. 80세 이상 여성은 50대 여성보다 만성 심부전으로 사망할 확률이 11배 높다. 80세 이상 남성은 50대 남성보다 이 확률이 9배 높다. 인구 고령화가 심해지면서 동맥은 물론 정맥 질환도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둘째, 암 경험자의 증가다. 우리나라 암 경험자는 100만 명이 넘는다. 암 완치 판정을 받은 사람 중 심혈관 질환에 걸리는 이가 많다. 특히 암 환자는 심부정맥 혈전증 발병 위험이 높다.
김모(60·경기도 구리시)씨는 최근 건강검진에서 위암 2기 진단을 받았다. 위암수술 전 검사를 해 보니 급성 심근경색과 심부정맥 혈전증이 의심됐다. 김씨는 암 수술을 미루고 관상동맥에 스텐트를 넣는 수술을 받은 뒤 혈전방지제를 복용하고 있다.
암 환자 5명 중 1명(20%)이 심부정맥 혈전증을 겪는다. 대체로 나이가 많고 동반 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암 자체가 혈전을 잘 만드는 측면도 있다. 암 수술이나 항암 치료, 호르몬 치료도 혈전 생성의 위험을 높인다. 심부정맥 혈전증은 췌장암·뇌종양·위암·림프종·자궁내막암에서 많이 발생한다. 이런 이유로 미국에서는 암 수술이나 항암 치료를 받기 전 혈전방지제를 투여하는 병원이 많다.
셋째, 치매·파킨슨병 환자의 증가다. 이들은 대체로 나이가 많고 거동이 불편해 누워 지내는 시간이 길다. 한 자세로 장시간 앉거나 누워 있으면 심부정맥 혈전증이 생기기 쉽다.
넷째, 약물 때문이다. 안모(48·여·서울 성북구)씨는 심하게 다리가 붓는 ‘하지 부종’ 때문에 병원을 찾았다. TV광고에 나오는 혈액순환 개선제도 먹어 보고 한의원에서 침·뜸 치료도 받았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진단 결과, 안씨의 하지 부종의 원인은 약물이었다. 안씨는 키 1m62㎝에 체중 73㎏으로 과체중인 데다 고혈압·당뇨병도 있어 약을 복용했다. 허리 통증 때문에 진통제도 자주 먹었다. 이런 약물은 혈관을 확장시킨다. 한꺼번에 여러 가지 약을 복용해 정맥이 과도하게 확장됐고 혈관에 혈액이 고여 다리가 부은 것이다. 고혈압 약을 바꾸고 체중을 5㎏ 줄이니 증상이 크게 개선됐다.
이처럼 약물에 의한 하지 부종은 수시로 나타나는 게 특징이다. 반면 오래 서 있거나 앉아 있는 사람은 하지 부종이 주로 아침에 나타난다.
하지 부종은 가볍게 넘겨선 안 된다. 다리의 심부정맥에서 생긴 혈전이 심장을 거쳐 폐동맥을 막으면 ‘폐동맥 색전증’을 부를 수 있다. 저혈압과 쇼크가 발생하고 자칫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 또 혈전으로 폐동맥이 좁아지거나 막히면 폐동맥 고혈압이 발생한다. 폐동맥 고혈압의 약 10%는 심부정맥 혈전증 때문이다. 정상 혈압은 20mmHg 안팎인데 폐동맥 고혈압이 심하면 혈압이 100mmHg까지 올라간다.
혈전 원인은 운동 부족·고령·비만
정맥 질환을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고지혈증·고혈압·당뇨병 등 만성질환이 있는 사람은 치료·관리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나이가 많거나 운동이 부족하면 혈관의 탄력성이 떨어지고 혈관이 과도하게 확장되기 쉽다. 혈액이 혈관 내에 고여 혈전도 쉽게 생긴다.
반면 정맥 탄력성이 좋고 혈액 역류를 방지하는 판막이 정상 작동하면 문제가 없다. 이를 위해 특히 운동(움직임)에 신경 써야 한다. 정맥 혈전 위험을 높이는 3대 요인은 운동 부족·고령·비만이다. 꼭 등산·마라톤처럼 특정 종목을 할 필요는 없다. 걷기만 해도 충분하다.
누워 있는 시간이 길수록, 한 자세로 오래 앉아 있을수록 혈전이 생길 위험이 크다. 가정·학교·사무실에서 한 시간 정도 한 자세로 있었다면 적어도 5분 이상 일어나 걷는 게 바람직하다. 걷기는 혈전을 방지할 뿐 아니라 정맥 혈관의 탄력성을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다리 정맥이 지나치게 확장됐거나 판막이 손상된 경우는 정맥 혈관 성형술 등의 치료를 받으면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 심부정맥 혈전증 위험이 높은 사람은 의사의 처방을 받아 혈전 방지제를 복용해야 한다.
만성병 있거나 흡연하면 심장 질환 위험 더 높아
원뿔 모양의 심장은 혈액순환의 핵심 기관이다. 혈액을 받아들이고 내보내며 몸 구석구석에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한다. 혈액은 대정맥→심장(우심방→우심실)→폐동맥→폐→폐정맥→심장(좌심방→좌심실)→대동맥 순서로 돈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심장 역시 가까이 있는 관상동맥을 통해 필요한 산소와 에너지를 얻는다.
심장 건강은 정맥보다 동맥과 더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동맥에 혈액이 제대로 흐르지 않으면 협심증이, 혈관 내피세포가 손상돼 혈관이 막히면 근육이 괴사하면서 심근경색이 유발된다. 혈관에 기름이 끼고 혈관 벽이 딱딱해지는 동맥경화증은 이 두 질환 모두를 수반한다. 심장 질환은 고지혈증·당뇨병·고혈압 등 만성질환자나 흡연자에게 더 많이 발생한다.
◆최동훈 교수
연세대 의대 졸업, 연세대 의대 교수,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 원장, 한국생체재료학회 임상의학분과 전문이사, 대한심혈관중재학회 혈관중재시술연구회 회장, 대한심장학회 기초과학연구회 회장
최동훈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장·심장내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건강한 당신] 한 자세로 오래 있으면 혈관에 피떡 … 1시간마다 5분 이상 움직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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